6월 초, 필리핀 출장 중 Mars Philippines의 한 동료와 이런 대화를 나누게 되었다.
“한국은 어떻게 이렇게 빠르게 성장하고, 문화와 기술 분야에서 세계적인 영향력을 갖게 된 걸까요?”
그 질문은 예전에도 들어본 적이 있지만, 이번만큼은 조금 더 깊이 생각해보게 되었다. 단순한 경제 성장 그 이상으로, 어떤 배경과 흐름이 지금의 한국을 만들었는지에 대한 개인적인 생각을 전달하며 이야기하다 보니, 내가 한국인으로서, 또 아시아의 다양한 시장과 팀을 이끄는 입장에서 한국의 지난 여정을 스스로 정리해볼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었다.
전쟁의 폐허에서 글로벌 소프트파워까지
한국은 전쟁의 폐허에서 시작했다. 1950년대 한국전쟁 이후, 국토는 무너지고 자원은 부족했으며 생존이 최우선이던 시기였다. 한국은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 중 하나였다. 하지만 불과 몇십 년 만에, 우리는 기술, 문화, 산업에서 글로벌 무대의 한 축을 담당하는 나라로 성장했다. 바로 우리가 흔히 말하는 ‘한강의 기적’이다. 그 안에는 한국이 가진 특수한 많은 ‘한계’들이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모르지만, 한국전쟁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정전 협정만 맺어졌을 뿐, 남북은 여전히 법적으로 전쟁 상태다. 이런 긴장감은 지금도 한국 사회 전반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한국 남성들은 의무적으로 군 복무를 수행해야 하고, 나 역시 해군에서 26개월간 복무하며 공동체와 책임, 자율과 절제에 대해 배울 수 있었다. 그 안에서 나만의 리더십을 만들어 낼 수 있는 계기도 찾을 수 있었다.하나의 작은 혁신으로!
강대국들 사이에서 살아남기 위한 경쟁, 그리고 새롭게 등장한 ‘주체적인 혁신’
한국은 지리적으로도 특별한 위치에 있다. 중국, 일본, 러시아라는 강대국들 사이에 자리하고, 미국은 오랜 기간 안보와 외교의 핵심 파트너 역할을 해 왔다. 이러한 외교적·지정학적 환경 속에서 한국은 늘 민감하고 긴장된 상태로 스스로를 단련해야 했고, 교육과 직업 세계 역시 자연스럽게 치열한 경쟁 중심으로 흘러갔다. 열심히 하지 않으면 살아남기 어려웠던 구조 속에서 한국인은 근면, 끈기, 집중력으로 상징되는 민족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하지만 지금의 젊은 세대는 이 경쟁 문화를 조금 다른 방식으로 해석하고 있다. 더 이상 조직에 충성하는 것만이 성공의 길이라는 인식은 옅어졌고, 그 대신 스스로의 정체성과 성장에 더욱 집중하고 있다. 한 회사나 조직에 인생을 거는 대신, 자신이 가진 기술과 감각, 가치관을 끊임없이 개발하고 확장하며 자신만의 경쟁력을 만들어가고 있다. 이들은 ‘충성’보다는 ‘몰입’에 가까운 태도로 살아간다. 매 순간 자신의 성장에 최선을 다하고, 본인의 속도와 방향을 주도적으로 설정하며, 사회의 빠른 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하며 자신만의 길을 개척하고 있다. 나는 이 변화가 단순한 세대 차이를 넘어, 훨씬 더 능동적이고 미래 지향적인 진화라고 생각한다.
‘혁신’을 만든 한계, 그리고 세계를 사로잡은 공감
이번에 다시 한번 깨달은 것은, 한국이 자신이 가진 한계를 단지 극복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것을 창의성의 씨앗으로 전환했다는 점이다. 정부는 산업뿐 아니라 교육, 스타트업, 문화산업까지 지속적으로 투자하며 다양한 방식으로 제약을 뛰어넘을 수 있는 기반을 만들어 왔다. 그 결과, K-컬처는 단순한 유행을 넘어, 세계가 주목하고 사랑하는 문화가 되었다.
BTS, BLACKPINK, 영화 <기생충>, <오징어게임> 등은 단지 인기 콘텐츠가 아니다. 그것은 한국 사회가 오랜 시간 경험해 온 결핍, 긴장, 갈등, 희망이라는 복잡한 감정을 압축해 담아낸 이야기들이다. 그리고 이 이야기들은 이제, 새로운 세대의 해석을 통해 더 다양한 형식과 목소리로 표현되고 있다. 중요한 것은, 한국은 이 한계를 ‘다름’으로 표현했지만, 동시에 보편적인 ‘공감’의 언어로 풀어냈기에 세계와 연결될 수 있었다는 점이다. 다름으로 이목을 끌고, 공감으로 마음을 열고, 그것이 다시 문화적 영향력으로 전환된 것. 이것이 바로 내가 가장 인상 깊게 바라보는 한국의 힘이다.
ChiefTree’s Spark
이렇듯 한국의 여정은 중요한 인사이트를 주고 있다. 바로 "한계는 가장 강력한 창의력의 출발점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K-컬처는 시간이 걸렸지만, 결국 ‘제약'이 '다름'을 만들고 그 '다름'이 ‘혁신과 영향력’으로 바뀌는 과정을 보여줬다. 지금 당장은 약점처럼 보일 수 있는 제약이, 오히려 더 큰 공감과 연결의 출발점이 되기도 한다.
혹시 여러분이 속한 브랜드, 조직, 혹은 개인의 삶에도 해결하기 어려운 제약이 있다면 그 안에서 여러분만의 정체성과 감정, 이야기, 가능성을 다시 들여다보길 바란다.
그 다름과 제약을 진심으로 마주할 때, 그것이 바로 혁신과 영향력의 시작점이 될 것이다.
'사람, 세상을 움직이는 힘 > ChiefTree의 다이어리' 카테고리의 다른 글
도전과 성과의 2년: Mars Wrigley Asia에서의 마케팅 리더십 (0) | 2024.08.25 |
---|---|
19살 겨울에 혼자 떠난 인도 배낭여행 (0) | 2024.02.17 |
2017년 4월 17일, 여의도 윤중로, 벚꽃, 그리고 마지막 (0) | 2017.08.05 |
작은 약속 (1) | 2013.09.28 |
나의 작은 기도 하나에도 귀를 기울이시고 응답하시는 하나님 (2) | 2010.04.3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