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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Web), Business (Marketing), Culture(Contents)에 관련된 여러 제 의견과 비전을 향해 나아가는 제 길을 나누려고 합니다. 진인사대천명(盡人事大天命) "사람의 일을 모두 다하고, 천명을 기다린다." ChiefTr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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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Naver에 대한 이해도 정도와 참신한 신규사업 제안을 보는 2007 하계 인턴쉽 중간과제 이때 발표로 중간과제 우수상(2등/10여개팀)을 받았다.

Naver는 사람들이 원하는 똑똑한 Brain이다! 라는 문구와( Naver = Brain ) 그에 걸맞은 신규 서비스를 제안해 보았다. ^-^

   

  나중에 알게 되었지만 이 때 야심 차게 제안한 신규서비스는 이미 구글에서 비슷하게 준비 하던 중이었던 것으로 알게 되었다. 그리고 이 때 다른 팀들이 제시한 대부분의 신규서비스들은 Naver와 Hangame이 이미 한 번씩 검토 해보았거나, 시장성이 없는 서비스들로, 평가자들이 우리들의 신규 아이디어를 원했다기 보다는 우리가  Naver와 Hangame, 즉 NHN을 얼마나 이해하고 있는 지 알아 보는 것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하지만 이 과제를 준비하면서 여러 가지 생각을 해보았고, 우리 팀만의 참신한 아이디어를 넣어 보았다. 웹2.0에 걸맞은 사용자 자동 패턴 분석 로그인 포털 시스템! 사용자가 원하는 경우에 로그인으로 검색하고 한 모든 패턴들을 수집해 자동화된 시스템을 바탕으로 자동 패턴을 맞추어 그 사용자의 기호에 걸맞은 뉴스들과 쇼핑 품목, 블로그, 자료 등 을 우선적으로 보여주는 시스템이다. 물론 수익성까지 고려를 해서 만들었다. 나중에 내가 구현해 보고 싶다.

   

  이 중간과제를 준비하며 Web business에 대해서 많은 것들을 공부할 수 있었다.

   

신규사업아이디어 제안서 Outl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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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ChiefTree
  

Steve Jobs Stanford Commencement Speech 2005

   

Thank you. I am honored to be with you today at your commencement from one of the finest universities in the world. Truth be told, I never graduated from college and this is the closest I've ever gotten to a college graduation. Today I want to tell you three stories from my life. That's it. No big deal. Just three stories.

 

먼저 세계 최고의 명문으로 꼽히는 이 곳에서 여러분들의 졸업식에 참석하게 된 것을 영광으로 생각합니다. 저는 대학을 졸업하지 못했습니다. 솔직히, 태어나서 대학교 졸업식을 이렇게 가까이서 보는 것은 처음이네요. 오늘, 저는 여러분께 제가 살아오면서 겪었던 세 가지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그게 답니다. 별로 대단한 이야기는 아니구요. 딱 세가지만요.

   

The first story is about connecting the dots. I dropped out of Reed College after the first 6 months, but then stayed around as a drop-in for another 18 months or so before I really quit. So why did I drop out?

   

먼저, 인생의 전환점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전 리드 칼리지에 입학한지 6개월만에 자퇴했습니다. 그래도 일년 반 정도는 도강을 듣다, 정말로 그만뒀습니다. 왜 자퇴했을까요?

   

It started before I was born. My biological mother was a young, unwed graduate student, and she decided to put me up for adoption. She felt very strongly that I should be adopted by college graduates, so everything was all set for me to be adopted at birth by a lawyer and his wife. Except that when I popped out they decided at the last minute that they really wanted a girl. So my parents, who were on a waiting list, got a call in the middle of the night asking: "We've got an unexpected boy; do you want him?" They said: "Of course." My biological mother found out later that my mother had never graduated from college and that my father had never graduated from high school. She refused to sign the final adoption papers. She only relented a few months later when my parents promised that I would go to college. This was the start in my life.

   

그것은 제가 태어나기 전까지 거슬러 올라갑니다. 제 생모는 대학원생인 젊은 미혼모였습니다. 그래서 저를 입양보내기로 결심했던 거지요. 그녀는 제 미래를 생각해, 대학 정도는 졸업한 교양있는 사람이 양부모가 되기를 원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태어나자마자 변호사 가정에 입양되기로 되어 있었습니다.그들은 여자 아이를 원했던 걸로 알고 있습니다. 그들 대신 대기자 명단에 있던 양부모님들은 한 밤 중에 걸려온 전화를 받고 : "어떡하죠? 예정에 없던 사내아이가 태어났는데, 그래도 입양하실 건가요?" "물론이죠"

   

And 17 years later, I did go to college. But I naively chose a college that was almost as expensive as Stanford, and all of my working-class parents' savings were being spent on my college tuition. After six months, I couldn't see the value in it. I had no idea what I wanted to do with my life and no idea how college was going to help me figure it out. And here I was spending all of the money my parents had saved their entire life. So I decided to drop out and trust that it would all work out OK. It was pretty scary at the time, but looking back it was one of the best decisions I ever made. The minute I dropped out I could stop taking the required classes that didn't interest me, and begin dropping in on the ones that looked far more interesting.

   

그런데 알고보니 양어머니는 대졸자도 아니었고, 양아버지는 고등학교도 졸업못한 사람이어서 친어머니는 입양동의서 쓰기를 거부했습니다. 친어머니는 양부모님들이 저를 꼭 대학까지 보내주겠다고 약속한 후 몇 개월이 지나서야 화가 풀렸습니다. 17년후, 저는 대학에 입학했습니다. 그러나 저는 멍청하게도 바로 이 곳, 스탠포드의 학비와 맞먹는 값비싼 학교를 선택했습니다. 평범한 노동자였던 부모님이 힘들게 모아뒀던 돈이 모두 제 학비로 들어갔습니다. 결국 6개월 후, 저는 대학 공부가 그만한 가치가 없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내가 진정으로 인생에서 원하는 게 무엇인지, 그리고 대학교육이 그 것에 얼마나 어떻게 도움이 될지 판단할 수 없었습니다. 게다가 양부모님들이 평생토록 모은 재산이 전부 제 학비로 들어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모든 것이 다 잘 될거라 믿고 자퇴를 결심했습니다. 당시에는 두려웠지만, 뒤돌아 보았을때 제 인생 최고의 결정 중 하나였던 것 같습니다. 자퇴한 순간, 흥미없던 필수과목들을 듣는 것은 그만두고 관심있는 강의만 들을 수 있었습니다.

   

It wasn't all romantic. I didn't have a dorm room, so I slept on the floor in friends' rooms, I returned coke bottles for the 5¢ deposits to buy food with, and I would walk the 7 miles across town every Sunday night to get one good meal a week at the Hare Krishna temple. I loved it. And much of what I stumbled into by following my curiosity and intuition turned out to be priceless later on. 

 

그렇다고 꼭 낭만적인 것만도 아니었습니다. 전 기숙사에 머물 수 없었기 때문에 친구 집 마룻바닥에 자기도 했고 한 병당 5 센트씩 하는 코카콜라 빈병을 팔아서 먹을 것을 사기도 했습니다. 또 매주 일요일, 단 한번이라도 제대로 된 음식을 먹기 위해 7마일이나 걸어서 하레 크리슈나 사원의 예배에 참석하기도 했습니다. 맛있더군요. 당시 순전히 호기와 직감만을 믿고 저지른 일들이 후에 정말 값진 경험이 됐습니다. 

 

Let me give you one example: Reed College at that time offered perhaps the best calligraphy instruction in the country. Throughout the campus every poster, every label on every drawer, was beautifully hand calligraphed. Because I had dropped out and didn't have to take the normal classes, I decided to take a calligraphy class to learn how to do this. I learned about serif and san serif typefaces, about varying the amount of space between different letter combinations, about what makes great typography great. It was beautiful, historical, artistically subtle in a way that science can't capture, and I found it fascinating.

   

예를 든다면 그 당시 리드 칼리지는 아마 미국 최고의 서체 교육을 제공했던 것 같습니다. 학교 곳곳에 붙어있는 포스터, 서랍에 붙어있는 상표들은 너무 아름다웠구요. 어차피 자퇴한 상황이라, 정규 과목을 들을 필요가 없었기 때문에 서체에 대해서 배워보기로 마음먹고 서체 수업을 들었습니다. 그 때 저는 세리프와 산 세리프체를, 다른 글씨의 조합간의 그 여백의 다양함을, 무엇이 위대한 타이포그래피를 위대하게 만드는 지를 배웠습니다. 그것은 '과학적'인 방식으로는 따라하기 힘든 아름답고, 유서깊고, 예술적으로 미묘한 것이었고, 전 매료되었습니다.

   

None of this had even a hope of any practical application in my life. But ten years later, when we were designing the first Macintosh computer, it all came back to me. And we designed it all into the Mac. It was the first computer with beautiful typography. If I had never dropped in on that single course in college, the Mac would have never had multiple typefaces or proportionally spaced fonts. And since Windows just copied the Mac, it's likely that no personal computer would have them. If I had never dropped out, I would have never dropped in on that calligraphy class, and personal computers might not have the wonderful typography that they do. Of course it was impossible to connect the dots looking forward when I was in college.

   

이런 것들 중 어느 하나라도 제 인생에 실질적인 도움이 될 것 같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나 10년 후 우리가 첫번째 매킨토시를 구상할 때, 그 것들은 고스란히 빛을 발했습니다. 우리가 설계한 매킨토시에 그 기능을 모두 집어넣었으니까요. 그것은 아름다운 서체를 가진 최초의 컴퓨터였습니다. 만약 제가 그 서체 수업을 듣지 않았다면 매킨토시의 복수서체 기능이나 자동 자간 맞춤 기능은 없었을 것이고 맥을 따라한 윈도우도 그런 기능이 없었을 것이고, 결국 개인용 컴퓨터에는 이런 기능이 탑재될 수 없었을 겁니다. 만약 학교를 자퇴하지 않았다면, 서체 수업을 듣지 못했을 것이고 결국 개인용 컴퓨터가 오늘날처럼 뛰어난 글씨체들을 가질 수도 없었을 겁니다. 물론 제가 대학에 있을 때는 그 순간들이 내 인생의 전환점이라는 것을 알아챌 수 없었습니다.

 

But it was very, very clear looking backwards ten years later.  Again, you can't connect the dots looking forward; you can only connect them looking backwards. So you have to trust that the dots will somehow connect in your future. You have to trust in something - your gut, destiny, life, karma, whatever. Because believing that the dots will connect down the road will give you the confidence to follow your heart, even when it leads you off the well-worn path. And that will make all the difference.

그러나 10년이 지난 지금에서야 모든 것이 분명하게 보입니다. 달리 말하자면, 지금 여러분은 미래를 알 수 없습니다 : 다만 현재와 과거의 사건들만을 연관시켜 볼 수 있을 뿐이죠. 그러므로 여러분들은 현재의 순간들이 미래에 어떤 식으로 든지 연결된다는 걸 알아야만 합니다. 여러분들은 자신의 배짱, 운명, 인생, 카르마(업) 등 무엇이든지 간에 '그 무엇'에 믿음을 가져야만 합니다. 이런 믿음이 저를 실망시킨 적이 없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제 인생에서 남들과는 다른 모든 '차이'들을 만들어냈습니다.

   

My second story is about love and loss. I was lucky - I found what I loved to do early in life. Woz and I started Apple in my parent's garage when I was 20. We worked hard, and in 10 years Apple had grown from just the two of us in a garage into a $2 billion company with over 4,000 employees. We had just released our finest creation - the Macintosh - a year earlier, and I had just turned 30. And then I got fired. How can you get fired from a company you started? Well, as Apple grew, we hired someone who I thought was very talented to run the company with me, and for the first year or so things went well. But then our visions of the future began to diverge and eventually we had a falling out. When we did, our Board of Directors sided with him. And so at 30 I was out. And very publicly out. What had been the focus of my entire adult life was gone, and it was devastating.

 

두번째는 사랑과 상실입니다. 저는 운 좋게도 인생에서 정말 하고 싶은 일을 일찍 발견했습니다. 제가 20살 때, 부모님의 차고에서 워즈(스티브 워즈니악)와 함께 애플의 역사가 시작됐습니다. 우리는 열심히 일해서, 차고에서 2명으로 시작한 애플은 10년 후에 4,000명의 종업원을 거느린 2백억달러 짜리 기업이 되었습니다. 제 나이 29살, 우리는 최고의 작품인 매킨토시를 출시했습니다. 그러나 이듬해 저는 해고당했습니다.  내가 세운 회사에서 내가 해고 당하다니! 당시, 애플이 점점 성장하면서, 저는 저와 함께 회사를 경영할 유능한 경영자를 데려와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처음 1년정도는 그런대로 잘 돌아갔습니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우리의 비전은 서로 어긋나기 시작했고, 결국 우리 둘의 사이도 어긋나기 시작했습니다. 이 때, 우리 회사의 경영진들은 존 스컬리의 편을 들었고, 저는 30살에 쫓겨나야만 했습니다. 그것도 아주 공공연하게.

 

I really didn't know what to do for a few months. I felt that I had let the previous generation of entrepreneurs down - that I had dropped the baton as it was being passed to me. I met with David Packard and Bob Noyce and tried to apologize for screwing up so badly. I was a very public failure, and I even thought about running away from the Valley. But something slowly began to dawn on me. I still loved what I did. The turn of events at Apple had not changed that one bit. I had been rejected, but I was still in love. And so I decided to start over.

 

저는 인생의 촛점을 잃어버렸고, 뭐라 말할 수 없는 참담한 심정이었습니다. 전 정말 말 그대로, 몇 개월 동안 아무 것도 할 수가 없었답니다. 마치 달리기 계주에서 바톤을 놓친 선수처럼, 선배 벤처기업인들에게 송구스런 마음이 들었고 데이비드 패커드(HP의 공동 창업자)와 밥 노이스(인텔 공동 창업자)를 만나 이렇게 실패한 것에 대해 사과하려했습니다. 저는 완전히 '공공의 실패작'으로 전락했고, 실리콘 밸리에서 도망치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제 맘 속에는 뭔가가 천천히 다시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전 여전히 제가 했던 일을 사랑했고, 애플에서 겪었던 일들조차도 그런 마음들을 꺾지 못했습니다.

   

I didn't see it then, but it turned out that getting fired from Apple was the best thing that could have ever happened to me. The heaviness of being successful was replaced by the lightness of being a beginner again, less sure about everything. It freed me to enter one of the most creative periods of my life.

   

전 해고당했지만, 여전히 일에 대한 사랑은 식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전 다시 시작하기로 결심했습니다. 당시에는 몰랐지만, 애플에서 해고당한 것은 제 인생 최고의 사건임을 깨닫게 됐습니다.

   

During the next five years, I started a company named NeXT, another company named Pixar, and fell in love with an amazing woman who would become my wife. Pixar went on to create the world's first computer animated feature film, Toy Story, and is now the most successful animation studio in the world. In a remarkable turn of events, Apple bought NeXT, I retuned to Apple, and the technology we developed at NeXT is at the heart of Apple's current renaissance. And Laurene and I have a wonderful family together.

   

그 사건으로 인해 저는 성공이란 중압감에서 벗어나서 초심자의 마음으로 돌아가 자유를 만끽하며, 내 인생의 최고의 창의력을 발휘하는 시기로 갈 수 있게 됐습니다. 이후 5년동안 저는 '넥스트', '픽사'를 만들고, 그리고 지금 제 아내가 되어준 그녀와 사랑에 빠져버렸습니다. 픽사는 세계 최초의 3D 애니메이션 토이 스토리를 시작으로, 지금은 가장 성공한 애니메이션 제작사가 되었습니다. 세기의 사건으로 평가되는 애플의 넥스트 인수와 저의 애플로 복귀 후, 넥스트 시절 개발했던 기술들은 현재 애플의 르네상스의 중추적인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I'm pretty sure none of this would have happened if I hadn't been fired from Apple. It was awful tasting medicine, but I guess the patient needed it. Sometimes life's gonna hit you in the head with a brick. Don't lose faith. I'm convinced the only thing that kept me going was that I loved what I did. You've got to find what you love. And that is as true for your work as it is for your lovers. Your work is going to fill a large part of your life, and the only way to be truly satisfied is to do what you believe is great work. And the only way to do great work is to love what you do. If you haven't found it yet, keep looking. And don't settle. As with all matters of the heart, you'll know when you find it. And like any great relationship, it just gets better and better as the years roll on. So keep looking. Don't settle.

   

또한 로렌과 저는 행복한 가정을 꾸리고 있습니다. 애플에서 해고당하지 않았다면, 이런 기쁜 일들 중 어떤 한 가지도 겪을 수도 없었을 것입니다. 정말 독하고 쓰디 쓴 약이었지만, 이게 필요한 환자도 있는가 봅니다. 때로 인생이 당신의 뒷통수를 때리더라도, 결코 믿음을 잃지 마십시오. 전 반드시 인생에서 해야 할, 제가 사랑하는 일이 있었기에, 반드시 이겨낸다고 확신했습니다. 당신이 사랑하는 것을 찾아보세요. 사랑하는 사람이 내게 먼저 다가오지 않듯, 일도 그런 것이죠. '노동'은 인생의 대부분을 차지합니다. 그런 거대한 시간 속에서 진정한 기쁨을 누릴 수 있는 방법은 스스로가 위대한 일을 한다고 자부하는 것입니다. 자신의 일을 위대하다고 자부할 수 있을 때는, 사랑하는 일을 하고 있는 그 순간 뿐 입니다. 지금도 찾지 못했거나, 잘 모르겠다 해도 주저앉지 말고 포기하지 마세요. 전심을 다하면 반드시 찾을 수 있습니다. 일단 한 번 찾아낸다면, 서로 사랑하는 연인들처럼 시간이 가면 갈수록 더욱 더 깊어질 것입니다. 그러니 그 것들을 찾아낼 때까지 포기하지 마세요. 현실에 주저앉지 마세요.

   

My third story is about death. When I was 17, I read a quote that went something like: "If you live each day as if it was your last, someday you'll most certainly be right." It made an impression on me, and since then, for the past 33 years, I have looked in the mirror every morning and asked myself: "If today were the last day of my life, would I want to do what I am about to do today?" And whenever the answer has been "No" for too many days in a row, I know I need to change something.

   

세번째는 죽음에 관한 것입니다. 17살 때, 이런 경구를 읽은 적이 있습니다. "하루 하루를 인생의 마지막 날처럼 산다면, 언젠가는 바른 길에 서 있을 것이다." 이 글에 감명받은 저는 그 후 50살이 되도록 매일아침 거울을 보면서 자신에게 묻곤 했습니다. 오늘이 내 인생의 마지막 날이라면, 지금 하려고 하는 일을 할 것인가? "아니오!" 라는 답이 계속 나온다면, 다른 것을 해야 한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Remembering that I'll be dead soon is the most important tool I've ever encountered to help me make the big choices in life. Because almost everything - all external expectations, all pride, all fear of embarrassment or failure - these things just fall away in the face of death, leaving only what is truly important. Remembering that you are going to die is the best way I know to avoid the trap of thinking you have something to lose. You are already naked. There is no reason not to follow your heart.

   

인생의 중요한 순간마다 '곧 죽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명심하는 것이 저에게는 가장 중요한 도구가 됩니다. 왜냐구요? 외부의 기대, 각종 자부심과 자만심. 수치스러움와 실패에 대한 두려움들은 '죽음' 을 직면해서는 모두 떨어져나가고, 오직 진실로 중요한 것들만이 남기 때문입니다. 죽음을 생각하는 것은 무엇을 잃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서 벗어나는 최고의 길입니다. 지금 모두 잃어버린 상태라면, 더 이상 잃을 것도 없기에 본능에 충실할 수밖에 없습니다.

 

About a year ago I was diagnosed with cancer. I had a scan at 7:30 in the morning, and it clearly showed a tumor on my pancreas. I didn't even know what a pancreas was. The doctors told me this was almost certainly a type of cancer that is incurable, and that I should expect to live no longer than three to six months. My doctor advised me to go home and get my affairs in order, which is doctor's code for prepare to die. It means to try and tell your kids everything you thought you'd have the next 10 years to tell them in just a few months. It means to make sure everything is buttoned up so that it will be as easy as possible for your family. It means to say your goodbyes.

   

저는 1년 전쯤 암진단을 받았습니다. 아침 7시 반에 검사를 받았는데, 이미 췌장에 종양이 있었습니다. 그전까지는 췌장이란 게 뭔지도 몰랐는데요. 의사들은 길어야 3개월에서 6개월이라고 말했습니다. 주치의는 집으로 돌아가 신변정리를 하라고 했습니다. 죽음을 준비하라는 뜻이었죠. 그것은 내 아이들에게 10년 동안 해줄 수 있는 것을 단 몇 달 안에 다 해치워야 된단 말이었고, 임종 시에 사람들이 받을 충격이 덜하도록 매사를 정리하란 말이었고 작별인사를 준비하라는 말이었습니다.

   

I lived with that diagnosis all day. Later that evening I had a biopsy, where they stuck an endoscope down my throat, through my stomach into my intestines, put a needle into my pancreas and got a few cells from the tumor. I was sedated, but my wife, who was there, told me that when they viewed the cells under a microscope the doctors started crying because it turned out to be a very rare form of pancreatic cancer that is curable with surgery. I had the surgery and thankfully I'm fine now. 

   

전 불치병 판정을 받았습니다. 그 날 저녁 위장을 지나 장까지 내시경을 넣어서 암세포를 채취해 조직검사를 받았습니다. 저는 마취상태였는데, 후에 아내가 말해주길, 현미경으로 세포를 분석한 결과 치료가 가능한 아주 희귀한 췌장암으로써, 의사들까지도 기뻐서 눈물을 글썽였다고 합니다. 저는 수술을 받았고, 지금은 괜찮습니다. 

   

This was the closest I've been to facing death, and I hope it's the closest I get for a few more decades. Having lived through it, I can now say this to you with a bit more certainty than when death was a useful but purely intellectual concept: No one wants to die. Even people who want to go to heaven don't want to die to get there. And yet death is the destination we all share. No one has ever escaped it. And that is as it should be, because Death is very likely the single best invention of Life. It is Life's change agent. It clears out the old to make way for the new. Right now the new is you, but someday not too long from now, you will gradually become the old and be cleared away. Sorry to be so dramatic, but it is quite true.

   

그 때만큼 제가 죽음에 가까이 가 본 적은 없는 것 같습니다. 또한 앞으로도 수 십년간은 그렇게 가까이 가고 싶지 않습니다. 이런 경험을 해보니, '죽음'이 때론 유용하단 것을 머리로만 알고 있을 때보다 더 정확하게 말할 수 있습니다. 아무도 죽길 원하지 않습니다. 천국에 가고 싶다는 사람들조차도 그 곳에 가기위해 죽고 싶어 하지는 않죠. 그리고 여전히 죽음은 우리 모두의 숙명입니다. 아무도 피할 수 없죠. 그리고 그래야만 합니다. 왜냐하면 삶이 만든 최고의 발명이 '죽음'이니까요. 죽음은 '인생'을 변화시킵니다. 죽음은 새로운 것이 헌 것을 대체할 수 있도록 만들어줍니다. 지금의 여러분들은 그 중에 '새로움'이란 자리에 서 있습니다. 그러나 언젠가 머지 않은 때에 여러분들도 새로운 세대들에게 그 자리를 물려줘야할 것입니다. 너무 극적으로 들렸다면 죄송하지만, 사실이 그렇습니다.

 

Your time is limited, so don't waste it living someone else's life. Don't be trapped by dogma - which is living with the results of other people's thinking. Don't let the noise of other's opinions drowned out your own inner voice. And most important, have the courage to follow your heart and intuition. They somehow already know what you truly want to become. Everything else is secondary. 

 

여러분들의 삶은 제한되어 있습니다. 그러니 낭비하지 마십쇼. 도그마(다른 사람들의 생각)에 얽매이지 마십쇼. 타인의 소리들이 여러분들 내면의 진정한 목소리를 방해하지 못하게 하세요.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마음과 영감을 따르는 용기를 가지는 것입니다. 이미 마음과 영감은 당신이 진짜로 무엇을 원하는지 알고 있습니다. 나머지 것들은 부차적인 것이죠.

   

When I was young, there was an amazing publication called The Whole Earth Catalog, which was one of the bibles of my generation. It was created by a fellow named Stewart Brand not far from here in Menlo Park, and he brought it to life with his poetic touch. This was in the late 1960's, before personal computers and desktop publishing, so it was all made with typewriters, scissors, and Polaroid cameras. It was sort of like Google in paperback form, 35 years before Google came along: it was idealistic, and overflowing with neat tools and great notions.  

   

제가 어릴 때, 제 나이 또래라면 다 알만한 '지구 백과'란 책이 있었습니다. 여기서 그리 멀지 않은 먼로 파크에 사는 스튜어트 브랜드란 사람이 쓴 책인데, 자신의 모든 걸 불어넣은 책이었지요. PC나 전자출판이 존재하기 전인 1960년대 후반이었기 때문에, 타자기, 가위, 폴라노이드로 그 책을 만들었습니다. 35년 전의 책으로 된 구글이라고나 할까요. 그 책은 위대한 의지와 아주 간단한 도구만으로 만들어진 역작이었습니다.

 

Stewart and his team put out several issues of The Whole Earth Catalog, and then when it had run its course, they put out a final issue. It was the mid-1970s, and I was your age. On the back cover of their final issue was a photograph of an early morning country road, the kind you might find yourself hitchhiking on if you were so adventurous. Beneath it were the words: "Stay Hungry. Stay Foolish." It was their farewell message as they signed off. Stay Hungry. Stay Foolish. And I have always wished that for myself. And now, as you graduate to begin anew, I wish that for you. 

 

스튜어트와 친구들은 몇 번의 개정판을 내놓았고, 수명이 다할 때쯤엔 최종판을 내놓았습니다. 그 때가 70년대 중반, 제가 여러분 나이 때였죠. 최종판의 뒤쪽 표지에는 이른 아침 시골길 사진이 있었는데, 아마 모험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히치하이킹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지요. 그 사진 밑에는 이런 말이 있었습니다 : 배고픔과 함께, 미련함과 함께 배고픔과 함께, 미련함과 함께. 그것이 그들의 마지막 작별인사였습니다. 저는 이제 새로운 시작을 앞둔 여러분들이 여러분의 분야에서 이런 방법으로 가길 원합니다.

 

Stay Hungry. Stay Foolish. Thank you all very much.

   

배고픔과 함께, 미련함과 함께. 감사합니다.

   

출처------------------------------------------------------

http://www.spicus.com/contents/new_view.asp?mode=1&id=2&page=3&CONTENT_GB_CD=0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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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ChiefTr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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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고 CEO로 구성된 신입생 동문 멘토링
   - 글로벌 체험 교육 프로그램 uG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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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ttp://cob.yonsei.ac.kr/ysb_news/notice/view/?post=2539

   

   

(1년 전 글 입니다.)
 연세대학교 경영대학에서 신입생을 모집하고 있다. 내가 여기에서 공부하면 느꼈던 점은 최고의 학생들이 최고의 기회를 누리면서 열정적인 교수님과 함께 수업을 할 수 있다는 점이다. 

 특히, 지금 학과장님으로 계시는 김진우 교수님의 매주 목요일 4시부터 6시까지의 "학과장님과의 대화"시간을 보면 우리 연대 경영학과가 어째서 우리나라 최고의 경영학과로 꼽히는 지 알 수 있다. 학생들과의 대화를 통해 그 의견과 아이디어를 반영해 그 의견이 실제 정책으로 되어 나온다. 말은 쉬운 것 같지만, 정말 실행하기 어려운 일이다. 학과장으로써, 교수 중 한 사람으로써, 연구자로써, 그 바쁜 시간 중에 학생들의 위하시고 다양한 정책을 집행해가시는 모습에서 우리 연대 경영의 밝은 미래를 볼 수 있었다.

 나는 위에 소개된 장학제도 보다 연세대학교 경영학과가 운영하는 차별화된 프로그램들을 소개시켜주고 싶다.

첫 번째, 최고의 인재들의 모임! 4가지의 공식 인증 Track!
 이 트랙은 경영학과가 앞으로 사회에 중요한 분야가 될 큰 범주를 선택해서 그 분야에 맞는 비지니스 리더를 길러내는 Track이다. 현재 2개의 Track이 활성화 되어 있고, 앞으로 2개의 Track이 더 생겨날 예정이다. 트랙들은 기존의 Global Management Track(GMT) , Business Innovation Track(BIT), 새롭게 만들어 지는 Consulting  Track과 Pre-Law-Track이 있다

  GMT는 이 Track 중 가장 먼저 만들어진 Track으로 지금 14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고, 글로벌 리더를 양성한다는 목적으로 매년 세계경영현장 실습, 아시아 유수의 대학들과의 비지니스 포럼, 학기 중의 산학협력, 다양한 세션 등을 운영하고 있다. 이렇게 자세하게 설명하는 이유는 바로 내가 속한 Track이기도 하고, 연세대 경영학과 최고의 학회이기도 해서 그렇다. 들어갈 때, 5차에 걸친 회장단, 동문 선배님들, 교수님 면접을 보았다. 그리고 최고의 인재들과 선배님들을 통해 많이 부족한 나는 자극을 받으면서 그 속에서 많은 발전을 하고 있다.

두 번째, 세계로 직접 나가는 uGet 프로그램!
 이 프로그램은 작년에 처음 만들어진 실제 기업들과의 협력 프로그램이다.
이 프로그램을 통해서 매년 1학기에 각 기업별로 1개의 팀(3~4명)씩을 선발하는데, 이 선발된 팀은 1천만원의 지원금을 받고, 기업에서 요구하는 프로젝트를 실제 해당하는 국가에 가서 진행한다. 학생때 1천만원 짜리 프로젝트를 경험해 보고, 그 팀들이 내는 성과를 보면 연대 경영의 저력을 충분히 느낄 수 있을 거라 확신한다! 실제 이 프로젝트를 수행해 해당 기업에 취업이 확정된 경우도 많이 보았다. 참가하는 기업들은 삼성전자, 우리은행, 다음 등 대부분 국내 유수의 기업들이 참가한다.

(나는 uGET 2기로 삼성전자에게서 1천5백만원을 지원받아 총 4명이서 같이 브라질을 다녀왔다. 가서 브라질 시장에 맞는 새로운 Unmet Needs를 인터뷰와 관찰을 통해 찾아보고 돌아와서 1달 반 동안 브라질과 남미시장에 맞는 새로운 컨셉 폰 '토르세도르폰'을 발표 했고 최종 본선 팀 14팀 중 2등을 차지하는 영광을 얻었다. 학생때 이런 경험을 할 수 있는 곳은 단연 연세 경영대학 밖에 없으리라!)

열정과 도전의식을 가진 미래의 각 분야의 잠재적인 리더들! 연세대 경영학과로!! 우리들 다 같이 서로 경쟁하며 배우며 대한민국의 이름을 세계 곳곳에 휘 날리는 기둥이 되어보자!

(현재 2010년 신규제도)

자랑스러워 할 만한 좋은 제도가 또 생겨났다. 바로 Commencement Speech로 미국의 유명 대학들이 졸업식때 사회에서 명망이 있고 존경할 만한 분들을 졸업식 연사로 초청하는 제도 인데 이번에 박상용 경영대학 학장님이 도입을 결정하고 2010년 2월 졸업부터 시행하게 되었다. 내가 그 첫 번째 수혜자가 되는 것이다. 이번에 초청연사는 윤종용 삼성전자 상임고문님 이시다. 아래는 학장님이 학생들에게 보낸 글 전문이다.

 

졸업생들에게 보내는 글..

스티브 잡스는 미국 스탠포드대학교 졸업식에서 인생의 전환점들, 사랑과 실패, 죽음에 관한 자신의 경험들을 이야기 하면서, 마지막
부분에서는 패기 넘치는 젊은이들에게 "Stay hungry, Stay foolish" 라는 감동적인 메시지를 던졌습니다. 스티브
잡스의 스피치는 매우 훌륭한 졸업식 축사(Commencement Speech)로 아직까지도 회자되고 있습니다. 미국대학의 졸업식에
대부분의 졸업생이 적극적으로 참가하는 동기 중의 하나는 훌륭한 Commencement Speech의 전통이라고 합니다.

연대 경영대학도 금년부터는 Commencement Speech 제도를 도입하기로 하였습니다. 이번 졸업식에서 여러분들이 인생을
살아가면서 가슴 깊이 새길 수 있는 메시지를 전달해 주실 분으로 윤종용 삼성전자 상임고문을 초빙하였습니다.
윤 고문께서는 우리나라 CEO의 대표격으로 삼성전자 부회장을 지냈으며, 최근 하바드 비즈니스 리뷰(HBR)에서 "세계 최고 CEO
2위"에 선정되어 세계로부터 많은 주목을 받은 분입니다.

Commencement Speech 제도를 도입하면서 졸업식 참가신청(RSVP) 제도도 함께 도입합니다. 졸업식을 질서정연하게
진행하기 위하여 도입하는 제도이니 졸업생 여러분의 이해와 협조를 부탁합니다. 특별히 진행되는 이번 졸업식에 모든 졸업생들이 참석하리라
믿고, 아래 내용 확인한 후 RSVP를 주기 바랍니다.

졸업생 여러분의 졸업을 진심으로 축하합니다.


연세대학교 경영대학
학장 박상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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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곳 연세대학교 경영대학에서 참 많은 것들을 배웠다. 앞으로 사회에 나가 그 배운 것들을 올바르게 사용하려 한다. 그래서 받은 것들을 후배들과 많은 사람들에게 나눠줄 것이다. 연세 경영에 먹칠 하지 않는 사람이 되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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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ChiefTree

   2007년 하계 NHN 인턴을 2개월간 경험하고 2개월간 했던 개인 Project들 각자 발표하는 시간이 왔다. 바로 최종과제 발표회 이다. 2달 동안 각자의 멘토님들 밑에서 멘토님이 지시한 일들이나 개인이 자처해서 맡은 일들을 발표하면 되었다. 

   

   우선 내가 인턴기간 중에 한 일은 개발분야 인턴으로 들어왔기 때문에 초기에는 개발자들이 어떤 개발환경에서 작업을 하는 지 직접 설치도 해보고 간단한 프로그램도 돌려보았다. 또한 개발자 분들을 지도선배님으로 따로 모시고 여러 가지를 질문도 해보고 서비스 프로그래밍에 대해 많은 것을 배웠다.

   

   하지만, 내 멘토님이었던 팀장님이 NHN의 미래에 관련된 프로젝트를 담당하시게 됨에 따라 나도 자원해서 팀장의 보조로 일하게 되었다. 그 결과 많은 직원들을 인터뷰하고 자료도 수집하고 정리하며 실제 회사의 일들을 폭넓게 경험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이 경험은 분명 내 미래의 Vision에 큰 밑거름이 될 것이라 생각 된다.

   

  어쨌든, 이 프로젝트를 도왔던 것을 토대로 최종과제 발표를 하였고, 최종과제 정자 개발 부문 1등을 차지하게 되었고 대표로 인사팀장님께 상을 받게 되었다. 그리고 같은 인턴들이 주는 진상, 인상, 정상 중에서 인상도 받게 되었다. 결국, 인턴 기간 동안 중간과제 우수상, 최종과제 정자 개발부문 1등, 인턴 인상, 이렇게 3관왕을 차지하게 되었다. 너무 과분한 상들을 수여하게 되어서 감격 이였다. 나보다 훨씬 잘 한 사람들이 많은데 주님께서 이끌어 주시고, 인턴 동기들과 멘토님들이 도와주셔서 거둔 성과였던 것 같다. 자신감을 가지고 지금과 같이 앞으로 나아가겠다!

   

   

인사팀장님의 상 수여 장면

   

각 부문별 1등 상품: 노트북 가방

   

인턴들이 주는 인턴 인상: 상품 포커칩 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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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ChiefTree